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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사후기
김**
ANZAC DAY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
안작데이는 매년 4월 25일로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호주와 뉴질랜드의 군대로서 적과 싸운 최초의 주요 군사 행동을 기념하여 축하한다. 호주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인 행사 중 하나이다.
ANZAC은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호주와 뉴질랜드 육군 군단)의 약자이다. 이 군대의 병사들은 빠르게 ANZACs로 알려졌고 이 이름을 가진 이들의 자부심은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다.
ANZAC Day가 호주인들에게 특별한 이유
1914년에 전쟁이 발생했을 때, 호주는 단지 연방제의 영연방이었다. 새 정부는 세계의 국가들 사이에 그 명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1915년에 호주와 뉴질랜드 병사들은 다르다넬스 해엽(Dardanelles)을 동맹국 해군들에게 열어주기 위해, 갈리폴리 반도(Gallipoli Peninsula)를 차지하기 위해 착수한 동맹국 탐험대의 일부분을 구성했습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독일의 동맹국,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 터기 안에 있는 이스탄불)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호주와 뉴질랜드 군대는 4월 25일에 갈리폴리에 착륙했고, 오스만 터키의 수비대들의 맹렬한 저항에 맞섰다. 터키를 전쟁에서 패퇴시키기 위해 계획된 대담한 일격은 빠르게 교착상태가 되었고, 군사작전은 8개월 동안 끌게 되었다. 1915년 말에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를 입고 큰 고난을 견딘 후 동맹국 군대는 대피했다. 8000명이 넘은 호주의 병사들이 희생되었고, 갈리폴리 착륙의 소식은 본국에 있는 호주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게 되어, 곧 4월 25일은 호주인들이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날이 되었다.
갈리폴리 군사작전은 군사 목적에 실패했을지라도, 군사작전 기간 중에 호주와 뉴질랜드의 행동은 호주인들에게 모두 강한 유산으로 남았다. ‘ANZAC의 전설’로 알려진 그들은 두 나라의 과거와 미래를 구체화하는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조기 추모
4월 25일은 1916년에 공식적으로 ANZAC Day로 이름 지어졌다. 안작데이는 호주에서 폭 넓은 여러 가지의 의식들과 서비스들로 기념된다. 또한 런던 도처에서는 행진으로, 이집트에 있는 호주 캠프에서는 스포츠 데이로 기념되고, 런던에서는 2,000명 이상의 호주와 뉴질랜드 군대가 온 거리를 행진한다. 런던신문은 그들을 ‘갈리폴리의 기사단’이라고 칭하여 표제를 붙였다. 호주 행진들은 호주 각지에서 열렸었다. 시드니 행진에서의 자동차 호송대들은 간호사들의 보살핌을 받은 갈리폴리에 참석한 부상당한 병사들을 운반했다. 전쟁의 남은 해 동안 안작데이는 애국적인 집결 및 모집 캠페인을 위한 기회로 이용되었고, AIF에 근무하는 구성원들의 퍼레이드는 대부분의 도시들에서 개최되었다.
1920년대에 안작데이는 전쟁 중에 죽은 60,000명의 호주인들을 위한 국가적인 기념의 날로 설립되었다. 1927년에 처음으로 호주의 모든 주는 안작데이를 공휴일로 정하고 그에 맞는 몇 가지 관례를 지켰다. 1930년대 중반에 우리가 현재 안작데이에 연상하는 모든 의식들 – 새벽 철야(dawn vigils), 행진, 기념 서비스, 친목회, two-up게임들 – 은 안작데이 문화의 일부로 굳게 확립되었다.
다가오는 제 2차 세계대전과 함께, 안작데이는 또한 전쟁에서 죽은 호주인들의 생명을 기념하기 위해 봉사했고 이후 몇 년간 안작데이는 호주가 관련되어있는 모든 군사 행동에서 죽은 호주인들을 포함하도록 넓혀왔다.
안작데이는 1942년에 처음 기념비에서 기념되었다. 일본의 공중 공격의 경우에는 대규모 대충 집회를 금지하는 정부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행진과 기념 서비도 하지 못한 작은 행사로 기념되었다. 그 이후로 안작데이는 기념비에서 매년 기념하고 있다.
ANZAC Day가 오늘날 의미하는 것
호주인들은 4월 25일을 두가지 형태를 갖는 국가적인 행사로 인정한다. 기념 서비가 새벽(원래의 착륙 시간)에 전국에서 개최된다. 그 이후에는 전직 군인들과 여성들은 주요 도시들과 소규모 센터에서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만난다. 기념 의식들은 더 공식적이고 주위에 마련되어 있는 국가 전쟁 기념비에서 개최된다. 이 과정 가운데 안작데이는 호주인들이 전쟁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의미들을 반영하는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