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를 빼놓고 20세기 서양미술사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피카소는 너무 흔하다. 앙리 마티스와 마크 샤갈은 어떤가? 피카소처럼 흔치 않아도 현대 미술사의 거장들이다. 그들의 작품을 뮤지엄과 갤러리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랜드센트럴에서 허드슨라인 기차 타고 혹은 뉴욕·뉴저지에서 자동차로 허드슨밸리를 향해 1시간 남짓 올라가면 록펠러 가문의 마을 ‘슬리피 할로’에 당도한다. 록펠러가 맨션 키쿠이트를 비롯해 필립스매너 밴 코틀랜드 매너 몽고메리 플레이스 히스토릭 에스테이트 등 호화 맨션이 즐비한 이 타운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자그마한 교회당이 있다.
포칸티코힐 유니온처치. 이곳엔 마티스와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10개가 가을의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신비로운 색채를 발하고 있다. 마티스와 샤갈 그들의 작품이 어떻게 조그만 시골의 교회당 창문을 장식하고 있을까? 미술을 사랑했던 록펠러 가문의 덕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부자들은 한결 고상하고 덕이 있어 보인다.
◆슬리피할로와 록펠러 가문=1890년대 초 석유재벌 존 D. 록펠러는 뉴욕 업스테이트의 고요한 마을 슬리피 할로(Sleepy Hollow Country)로 들어갔다. 그의 외동 아들 존 D. 록펠러 주니어는 세계 교회운동 지지자로 지역사회에서 교회당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그래서 온 가족이 주말에 예배를 볼 수 있는 교회당을 필요로 했다.
1920년대 유니온처치 교인들이 현재의 건물을 짓기로 결정했고 아버지 존 록펠러 주니어가 비용을 부담했다. 교회 타워의 카리용(종·鐘)은 존의 어머니인 로라 스펠만 록펠러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애비는 1920년대 수차례 파리에서 앙리 마티스(1869~1954)와 교분을 나누었으며 마티스를 현대 화가 중 가장 위대한 화가로 높이 평가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창립자 중 한 명이었던 애비는 MoMA에 첫 번째 솔로 쇼로 마티스 개인전을 강력히 추천했다.
1931년 마티스의 개인전 오프닝에 맞추어 뉴욕에 올 것을 설득하기도 했다. 애비는 모던아트를 혐오했던 남편 존으로 하여금 마티스를 위한 만찬을 대접하도록 유도했다. 존은 마티스를 만나 대화를 했어도 여전히 모던아트에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마티스의 로즈 윈도=원래 로즈 윈도(rose window)는 종탑과 함께 고딕 양식 교회당의 상징이다. 원형의 수레바퀴 모양이라 차륜창으로도 불리는 로즈 윈도는 파리의 노틀담 성당과 맨해튼의 세인트존더디바인 성당에서도 볼 수 있다.
1948년 애비가 작고하자 아들 존과 형제들은 포칸티코힐에 어머니의 심오한 인간성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을 반영하는 메모리얼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둘째 아들 넬슨은 어머니가 사랑했던 마티스에게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의뢰하자고 제안한다. 어머니를 추모할 가장 적합한 장소인 유니온처치에 설치하게 된 것이다.
마티스 만큼 완벽한 선택은 없었다. 스테인드글라스와 잘 어울리는 어머니 애비와 모던아티스트 중 색감을 너무도 중시하는 마티스는 잘 맞아 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무렵부터 노쇠한 거장 마티스는 가위와 색종이로 페이퍼컷 작업을 즐겼다.
넬슨도 마티스를 좋아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즈 윈도 프로포절을 받았을 때 마티스는 주저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여든네살이었고 몸도 쇠약해가고 있었던 것.
하지만 넬슨의 집요한 설득으로 마침내 마티스는 종이와 마술의 가위를 들었다. 1954년 11월 마티스가 죽었을 때 로즈 윈도의 축소모형이 그의 침실에 놓여있었다. 죽기 이틀 전에 완성한 것이다. 넬슨은 1956년 5월 13일 마더스데이에 로즈 윈도를 헌사하게 된다.
◆샤갈의 윈도 하나=어떻게 유대인 화가 샤갈이 록펠러의 기독교 예배당에 스테인드글라스 윈도를 설치하게 됐을까?
1960년 아버지 존이 사망하자 허드슨밸리의 슬리피 할로 지역을 사랑하고 포칸티코힐 집을 사랑했던 아버지를 추모하고 싶어졌다. 존의 자식 여섯 명은 유니온처치 안에 아버지 존을 기리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기독교 정신과 아버지 존의 삶을 강조하는 컬러풀한 윈도 프로젝트는 1960년 10월 교인총회를 통과했다. 그러면 누가 존 D. 록펠러 주니어의 추모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할 것인가?
이듬해 체이스맨해튼뱅크 회장이 된 넬슨은 부인 페기와 함께 파리를 여행 중이었다. 바쁜 일정 중 파리를 떠나기 전날 부부는 루브르박물관을 방문해 12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윈도 특별전을 보게 된다. 12개의 이스라엘 부족을 대표하는 이 윈도는 예루살렘의 대학병원에 있는 유대인 회당을 위해 제작된 것이었다. 아티스트는 마크 샤갈(1887~1985)이라는 이름의 러시아 출신 유대인이었다. 페기는 샤갈의 색채감각에 매료되어 유니온처치의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로 강력히 추천하게 된다.
뉴욕으로 돌아온 넬슨과 페기는 파리에서 발견한 샤갈에 대해 논의했다. 때마침 그해 MoMA에선 샤갈의 ‘예루살렘 윈도’전이 열려 식구들과 교인들이 모두 관람했다. 1963년에 이르러 유니온처치 윈도 작가는 샤갈로 정해진다.
샤갈은 흔쾌히 이 프로젝트를 수락하고 록펠러 가문에 윈도의 주제를 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넬슨을 비롯해 가족과 교인들은 10가지의 테마를 선정 록펠러 가문이 건축 자금을 지원한 맨해튼 리버사이드처치의 로버트 맥크래켄 목사에게 최종 심사를 맡겼다. 맥클래켄 목사는 존의 삶을 반영할 수 있는 성서의 대목 중 누가복음 중에 등장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일화를 선정했다.
◆샤갈의 윈도 8개=1963년 3월 프랑스 리비에라 해안의 칸에서 열린 한 회의에 참석했던 넬슨은 프로방스를 지나 방스(Vence)에 있는 샤갈의 집으로 찾아갔다. 우연의 일치라고나 할까 방스는 바로 마티스가 어머니 애비의 윈도를 제작한 곳이기도 하다.
넬슨은 샤갈 부부를 만나 정식으로 착한 사마리아인 윈도를 요청한 후 한 가지 더 윈도를 부탁했다. 바로 뉴기니아에서 인류학 원장을 갔다가 바다에서 실종된 조카 마이클을 추모하는 창문이었다. 선한 사마리아인 윈도는 1964년 9월 설치됐다.
이어 넬슨과 그의 가족은 나머지 8개 작은 창문도 샤갈에게 맡기기로 한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는 마이클을 위한 추모 윈도가 됐고 후에 넬슨 A. 록펠러 주지사 데이빗의 아내 페기 록펠러 로렌스 록펠러의 아내 마리 록펠러까지 추모하는 창이 된다.
나머지 작은 창 7개는 요엘 엘리야 다니엘 케루빔 에스겔 예레미야 이사야를 주인공으로 록펠러가문의 교회당을 장식하게 됐다.
▶주소=Union Church of Pocantico Hills(555 Bedford Rd. Pocantico Hills NY 10591) 914-631-2069.
www.hudsonvalley.org▶가는 길(맨해튼에서)=Henry Hudson Parkway North-Saw Mill River Parkway-Take exit 23 East View-Turn left onto Saw Mill Road for 1/2 mile-Turn right onto Lake Rd. At the intersection of Route 448 Lake Rd. changes to Bedford Rd.-Continue 1/2 mile on Bedford Road to Union Church
[코리아데일리]